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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간호]
문화가 깃든 우리 지역 이야기

6.25 전쟁의 배고픔을 채우는

먹거리

THEMA_ZONE2019.8월호

음식은 맛의 즐거움만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맛보는 훌륭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해방의 벅찬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6·25전쟁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야했던 아픔과 굶주림과 전쟁을 치러야 했던 피난민들의 허기를 채웠던 음식이 있다.
주먹밥
6·25전쟁이 발발하고 참전과 피난 속에서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준 대표적 음식으로 주먹밥이 있다. 주먹밥이란 갖은 양념을 한 밥을 손으로 주먹 모양으로 주물러 먹기 쉽게 만든 밥으로 휴대하기 간편하여 이동할 때나 전쟁 중에 먹는 음식으로 이용되어 왔다. 민간인 지게부대가 충분히 주먹밥을 배달하면 전투에서 승리했고 보급이 제대 이뤄지지 못하면 전투에 패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주먹밥의 역할은 중요했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기 위한 다부동 전투 승리도 주먹밥이 있어 가능했다고 한다.
  study_다부동 전투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조선인민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은 전투이다.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되면서 미군이 도착함에 따라 대대적인 반격으로 이 지역에 북한군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냄에 따라,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는데 실패하였고 결과적으로 북한군의 공격의도를 좌절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북한군은 이 전투에서 전력을 상당히 소진하여야 했고 이는 이 이후 전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군에게 있어서는 낙동강 전선을 고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하게 해준 결정적인 전투이기도 하였다
피난민을 먹여 살린 등겨수제비와 보리개떡
6·25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수진이었던 낙동강방어선까지 밀려나자 경남 곳곳은 스며든 피란민들로 넘쳐났다. 다행히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던 터라 보리 속 등겨로 만든 수제비, 개떡을 나눠먹으며 어려운 시절을 극복한 지혜의 음식이었다. 등겨수제비는 현재 성주향토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리개떡은 서울ㆍ경기, 강원도, 전북, 제주도 등지에서도 만들어 먹었고, 경북에서는 개떡, 등겨떡 이라고도 한다. 보릿겨란 보리에서 보리쌀을 뻬고 남은 속겨로 맥강 혹은 대맥강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보리등겨에 베타클루칸이라는 항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알려져 건강식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 납작만두
대구 납작만두는 부추와 당면으로 속을 채워 납작한 모양으로 만든 만두로, 대구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대구광역시 등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며, 대구 지역 내에서 직접 만든 납작 만두가 판매되는 곳은 서문시장과 교동시장이다. 일반 만두에 비해 납작만두는 속에 있는 내용물이 적고, 납작한 전 모양을 하고 있다. ‘납작’이라는 이름처럼 납작만두는 만두 속이 비치는 얇은 만두피에 부추·당면을 조금 넣고 부침개처럼 부친다. 만두피를 탈듯 말듯 노릇하게 굽는 것은 납작만두 맛의 비결이다. 간장과 대파를 만두 위에 넉넉히 얹어 먹기 때문에 톡 쏘는 대파향과 간장의 짭조름한 맛이 만두피와 어울린다.
할머니들 기억 속 소울푸드 소다칡빵
칡은 장미목 콩과의 덩굴식물로 산기슭의 양지에서 자란다. 추위에 강하고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탓에 예로부터 구황작물로 사용해왔으며, 한방에서는 칡의 뿌리를 말린 것을 갈근이라 하여 발한과 해열에 효과가 있는 약재로도 쓰인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칡은 여러 가지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음식으로 응용해 먹었던 칡은 6·25전쟁 중에서도 서민을 먹여 살렸던 좋은 재료였다. 그리고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우리나라에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빈곤국에 원조하는 MSA-402조에 따라 밀가루가 무상으로 공급됐다. 대량으로 들어온 밀가루는 제2의 주식이 되었고, 사람들은 밀가루를 다양한 형태의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이 두 가지 재료가 만나 전쟁으로 배고팠던 시절 굶주린 몸과 마음을 채워준 음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소다칡빵이다.
  study_MSA-402조
한국전쟁 이후 미국 정부는 그들의 농부들이 과잉 생산한 농산물을 강제로 사도록 강요했다. 그 근거는 ‘MSA 402조’란 법이다. MSA는 상호안전보장법을 가리킨다. 1954년에 기존의 것을 개정하면서 원조를 제공받는 국가가 원조액의 일정 비율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구매하도록 한 규정인 402조가 삽입되어 생겨난 이름이다. 한국전쟁도 잉여농산물의 또 다른 소비처였다. 하지만 휴전 이후 새로운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겨난 법이 ‘MSA’였고 다시 강제 구매조항을 넣었다. 아울러 1954년 7월 미국의회는 MSA를 개정해 PLO480법(통칭 잉여농산물처리법)을 성립시켰다. 이 법에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원조국의 빈곤층 원조, 재해구제 원조 그리고 학교급식에는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부산 비빔당면
부산광역시 중구 일대에서 만든 향토음식인 비빔당면은 당면을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이다. 비빔당면은 당면을 즉석에서 삶아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이 음식은 시장의 좌판에서 주로 먹던 음식이다. 6·25 전쟁 때에는 먹을거리가 귀하였기 때문에 국수처럼 고구마나 감자의 전분을 면으로 만들어 먹었다. 면 자체가 당면은 국수와는 달리 부풀어도 쫄깃하게 씹을 수 있고,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어 당면은 피난 시절부터 주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유래를 가진 비빔당면은 현재는 부산을 가면 맛보야야 하는 음식으로 회자되어 특징적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꿀꿀이 죽
국어사전에서 ‘꿀꿀이 죽’은 ‘여러 가지 먹다 남은 음식을 섞어 끓인 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죽은 6·25전쟁 직후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다. 먹다 남은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끊인 죽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보듯이 이 죽은 그렇게 맛으로 먹던 음식은 아니었다. 6·25전쟁의 비참함을 겪은 세대들에게 당시 이 죽도 없어서 못먹을 지경이었다. 음식이 귀한 시절 끼니를 굶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 가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음식이 썩어가는 중이라도 주린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6·25 전쟁 통에 식재료가 귀했고 식량배급이 힘들었던 당시 미군의 원조 물품은 전통 음식문화를 통째로 뒤집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민들의 전쟁음식이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중요한 음식문화 자체로 남아 뼈아픈 전쟁의 교훈까지 느끼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