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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
문화가 깃든 우리 지역 이야기

현재의 일상은

미래의 민속이 된다

IN_CULTURE2019.11월호

보통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정형화된 생활 습관이 있다.
추석에는 송편을 빚고, 설에는 떡국을 먹는다.
결혼을 할 때는 폐백을 드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에는 매년 제사를 지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대를 거듭해 반복하며
오래 이어져 온 생활습관을 우리는 풍속이라 한다.
 풍속 중에서도 민간에서 이어져온 풍속을 민속이라고 한다. 

태어나 죽기까지 한 사람의 일생에 깃든 민속
한 생명이 태어나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일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를 관혼상제라고 한다. 과거 집에서 아이를 낳던 시절, 아이가 태어나면 집 대문이나 길 어귀에 금줄을 걸었다. 부정을 막기 위해 걸린 금줄은 갓 태어나 면역력 약한 아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전통 회갑잔치

현대 회갑잔치

아이가 크면 어른으로 인정받는 관례를 지냈다. 관례를 지낸 여자는 쪽을 찌어 올리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했고, 남자는 관과 의복을 세 번 씌우고 갈아입는 삼가례를 행했다. 그렇게 오래 삶을 누리고 만 60세가 되면 환갑례를 열어 장수를 축하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면 주검을 처리하는 상장례를 치렀다. 그 후 집안에서는 대대로 고인의 넋을 기리는 제례를 치른다. 요즘은 금줄, 계례, 삼가례 등의 민속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삼칠일을 지키며, 스무살이 되면 성년의 날을 특별하게 지킨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관혼상제의 정신은 내려오고 있다.
특별한 날, 식탁 위를 채우는 맛있는 민속
민속이 어떤 행사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절기에 맞춰 식탁에 올리는 음식도 민속의 하나이다. 한 해가 시작되는 설에는 떡국을 먹었다. 길게 늘여서 가래로 뽑아 엽전과 같은 모양으로 썰어 먹는 떡에는 새해엔 좀 더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한해 풍요로운 농사를 기원하는 오곡밥을 먹었다. 삼월 삼짇날에는 찹쌀가루에 진달래꽃을 넣어 기름에 지진 화전을 먹었다. 화전 부치기는 놀이이기도 하고, 마을 잔치이기도 했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삼복에는 삼계탕 등 보양식을 해 먹어 기력을 보충했다. 추석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이제는 직접 빚기보다 시장에서 사먹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절기음식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설날 - 떡국

추석 - 송편

사라지기도 하고 계속 이어지기도 하는 민속
한때 탄광촌이 부흥하던 시절에는 탄광촌의 풍속이 있었다. 광부들은 저녁에 막걸리를 꼭 마셨다. 막걸리가 광부들의 직업병인 진폐증을 예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 광업소가 보급하는 사택에 세면시설이 없던 시절, 지역의 광부들은 평일 광업소 사택 목욕탕을 이용했다. 공휴일에는 여성들이 목욕탕을 이용했다. 이는 탄광촌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목욕풍속이다. 공휴일은 탄광촌 돌구이의 날이기도 했다. 돼지고기가 내장에 끼인 탄가루를 씻어준다고 믿었던 광부들은 휴일에 경치 좋은 계곡의 평평한 바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런 풍속들은 탄광촌이 사라지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지어온 농경민족이었다. 농사는 홀로 하기 버거운 일이기에 두레와 품앗이라는 형태로 이웃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함께 농사를 지으며 만들어진 공통의 습관이 풍속을 이루었다. 단오에는 대추나무 가지에 돌을 끼워놓고 더 많은 수확을 바라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했고, 김매기가 끝나는 음력 7월 백중에는 김매기가 끝났다는 의미에서 ‘호미씻이’를 하며 음식과 술을 장만해 농사짓느라 힘들었던 농민들이 함께 마시고 놀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농경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풍속은 없어졌고, 어떤 풍속은 이어지고 있다.

바지락호미 / 이미지 출처 : 해녀박물관


이렇듯 산업이 변화하고, 우리의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풍속은 사라지거나 변형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인생의 고비마다 하는 의례들, 식탁에 올리는 음식에 수백년 전의 풍속이 관여하고 있듯, 지금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는 습관과 문화 역시 오랜 세월이 지나 ‘민속’이라는 이름으로 후대의 삶의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이 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민속에는 당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