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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문화가 깃든 우리 지역 이야기

생활 속 정교한 나무 예술가,

목공예 장인

THEMA_ZONE2019.12월호

요즘은 집안 곳곳에 철제가구, 가전도 많지만 과거엔 온 집안 손길 닿는 것들 대다수가 나무였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하는 모든 나무를 재가공하는 산업, 목공예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산업이었다. 그러하니 나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삶에 들이는 손재주 좋은 목공예 장인들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에서 가구를 제작하는 게 익숙한 요즘, 여전히 직접 나무를 다루는 목공예 장인들을 국가에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호 육성하고 있다.
소목장

소목장 박명배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소목장은 나무로 건물의 문이나 창문, 가구를 제작하는 기술과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통칭해서 목수라고 하는데 목수는 보통 궁이나 주택과 같은 큰 건축물을 짓는 대목장과 건축물 실내에 들어가는 가구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소목장으로 구분된다. 1975년 1월 29일부터 소목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했다. 조선 전기에 소목장이 만드는 목가구는 주로 왕실과 양반계층을 위해 제작되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민간으로 널리 보급되어 종류가 많아지고 지역적인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지역적 특성과 나무를 다루는 기술은 소목장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소목장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소반장
소반장은 밥과 반찬 등의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작은 상, 소반을 만드는 일이나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을 말한다. 1992년 11월 10일,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소반이 언제부터 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인 각저총과 무용총에 여러 유형의 소반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때 삼국시대에 이미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전통적인 상차림은 독상이 기본이었기에 각 가정에 많은 소반이 필요했다. 소반은 지역적 특색이 강해 각 고장의 이름을 딴 소반이 유명한데 여러 소반 중에는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이 유명하다. 소반장들은 이러한 소반들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소반장 / 이미지 출처 : 국립무형유산

나전장
나전장은 조개껍질을 다양한 형태로 잘라 기물의 표면에 붙여 장식한 공예품인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장인을 말한다. 1966년 6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나전칠기에 사용되는 주재료인 자개는 소라・전복・진주조개 등의 조개껍질이 많이 쓰이는데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나는 것이 가장 질이 좋다. 그중 통영이 재료를 구하는 데 지역적으로 유리하다 보니 나전장은 주로 경남 통영 출신이 많다. 나전칠기는 나무로 만든 기물 표면을 고르고 칠죽을 발라 틈을 메우고 연마한 후 옻칠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광을 내서 완성한다. 특히 자개로 문양을 만드는 주요 기법은 끊음질과 줄음질로 나누어 나전칠기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다.

나전장 / 이미지 출처 : 국립무형유산

조각장

목조각장 / 이미지 출처 : 국립무형유산

목조각장은 전통 기술을 전수 받아 불상이나 보살상 등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1969년 12월 3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 108호로 지정되었다. 전통 목조각에는 탈, 솟대, 장승 등의 목조각도 있지만 우리나라 목조각은 불교가 전래 된 이후 사원건축과 불상 조각을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불교사찰과 불상 조각이 많아 목조각장들은 불교 목조각 전통기술자들이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우리 전통문화의 일부로서 이 불교 목조각 유물들은 체계적으로 발굴, 복원, 또한 목조각 기법을 계승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목조각장 / 이미지 출처 : 국립무형유산

완초장

완초장 이상재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왕골로 돗자리, 방석, 합 등의 기물을 엮어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103호로 지정되었다. 왕골은 완초, 용수초, 현완, 석룡추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서식하지만 중부지역 이남에서 주로 생산된다. 줄기의 표면은 매끄럽고 광택이 있으며 다 자라면 누런색이 된다. 염색이 쉽고 굵기 조절이 쉬워 특별한 도구 없이 다양한 공예품 제작이 가능하다. 특히 강화지역의 왕골 공예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완초 공예의 발상지로 알려진 강화 교동도에서는 왕골제품을 부업으로 만들어왔지만 최근 플라스틱 제품과 저가의 중국산 완초제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완초장들은 묵묵히 왕골을 엮어 우리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완초장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궁시장

궁시장 박호준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활을 만드는 사람은 궁장,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시장이다. 1971년 9월 13일 국가무형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활을 잘 만들어 중국에서는 우리를 동쪽의 활 잘 만들고 쏘는 민족이란 뜻으로 ‘동이’라고 불렀다. 임진왜란 이후 외국에서 조총이 수입되기 전까지 활은 믿음직한 전쟁용 무기였다. 대나무나 나무, 쇠를 반달형으로 휘어서 양 끝에 시위를 걸고 화살을 걸어 쏘는 활은 이제는 의례, 심신의 수련에 사용되며 우리 문화의 일부로 전승되고 있다. 궁시장은 이러한 활과 화살을 제작하며 그 기술을 계승하고 있다.



궁시장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낙죽장
낙죽장은 대나무 표면을 인두로 지져 글씨나 무늬를 새기는 장인을 말한다.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낙죽은 뜨거운 인두와 화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낙죽은 조선 순조때 나주사람 박창규에 의해 일제강점기까지 전승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인두 온도의 적합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불 가까이 대고 열기를 가늠해야 하는 만큼 장인의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 낙죽은 이제까지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낙죽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만큼 앞으로 우리 문화의 한 축으로 오랜 시간 전승될 것이다.






◀ 낙죽장 김기찬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낙죽장 /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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