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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호]
문화가 깃든 우리 지역 이야기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의 첫날이 의병의 날로 제정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싸운 수많은 의병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면서 많은 이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데요. 6월에는 의로운 삶을 살아간 우리나라 의병들의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2020년을 살아가는 오늘날, 기억했으면 하는 의병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국가에서 의병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의병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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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부대 1908년 양평 / 이미지 출처 : 독립기념관


‘의병의 날’은 의병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의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입니다.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일으킨 저항 조직이 바로 의병인데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의병’이라고 부릅니다. 의병이 가장 크게 일어났던 때는 조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와 그리고 한 말 (대한제국)입니다. 의병의 신분은 양반에서 천민까지 다양한 계층들이 참여했으며 그중 농민이 주력군이었습니다.

의병의 날은 1982년, 홍의장군 곽재우가 경남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의병의 효시가 되었던 1592년 4월 22일을 기념하자는 첫 건의가 있었습니다. 이후 기념일 제정이 미루어지다가 2008년 의령군수 등의 1만 명의 국민이 기념일 제정을 국회에 청원해, 마침내 2010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고, 같은 해 5월에야 기념일로써 공포될 수 있었습니다. 6월 1일은 ‘1592년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입니다.

곽재우로부터 시작된 첫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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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장군 곽재우 동상 / 이미지출처 : 공보처 홍보국 사진담당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는 4월 22일 의병을 일으켜 각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였는데요. 곽재우 의병장은 그가 입은 옷의 색깔로 인해 붉은 옷을 입은 장수라 하여 '홍의장군'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의병을 이끌고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일본군과 싸워 적의 낙동강 통행을 막았으며 여러 고을을 지켰다고 합니다. 의령군민의 문화예술행사인 의병제전은 1972년부터 의병창의일인 4월 22일을 전후로 개최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의령인의 화합과 자긍심을 모으는 군민의 날 행사와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 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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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 의병가사 / 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에 등장했던 인물 중 고애신을 기억하시나요? 배우 김태리가 열연을 펼친 고애신 역할이 바로 윤희순 의사를 비롯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해요.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 윤희순은 의병활동에 평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시아버지 유홍석을 비롯하여 남편과 아들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했으며 의병가사를 써서 남녀 모두 의병 활동을 할 것을 독려한 대표적인 여성의병입니다. 윤희순의 시아버지 유홍석은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일어난 계기로 춘천에서 의병활동을 하게 됩니다. 윤희순 의사 또한 춘천 가정리에서 탄약을 제조하는 등 의병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젊은이들과 여성들도 의병에 가담해 줄 것을 독려하면서 민중에 의해 불러지던 가사인 <의병가사집>을 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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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가사집 / 이미지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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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 / 이미지출처 : 위키백과


의병가사집의 가사는 대부분 1895년과 1896년에 지어졌습니다. 윤희순 의사는 나라를 잃고,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를 떠도는 자신과 같은 의병들의 신세를 대변하여 가사로 엮었습니다. 오늘날 윤희순 의사의 의병가사는 당시 여성이 의병을 고취하기 위해 지었다는 점을 비롯해 가사 및 문학사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평민 출신의 한말 의병장 신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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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장군 생가 / 이미지출처 : 문화재청


'신장군' 또는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리는 신돌석은 경북 동해안 일대를 거점으로 활약했던 의병장이었습니다. 15살부터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시작해,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19세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신돌석 의병장은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부산항에 정박 중인 일본 배를 그대로 뒤집어엎은 이야기, 청도지방을 지날 때 일본군들이 전설부설작업을 하는 걸 보고 전주를 뽑아 버리고 단숨에 일본 공병 네다섯 명을 처치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죠.

임진 의병들의 휴대용 전투식량이 떡으로 계승되다, 의령 망개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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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개떡 / 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의령의 명물 망개떡이 임진 의병들의 휴대용 전투식량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망개떡은 경상남도 의령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청미래덩굴나무의 망개잎으로 떡을 감싼 송편의 일종입니다. 흉년에는 구황식품으로 이용되었으며 형태와 만드는 법은 송편과 유사하지만 망개잎으로 감싸서 쪄내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의령에서는 망개떡과 관련된 두 개의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바지 음식 유래설입니다. 삼국시대에 가야와 백제는 양국간 화친을 위해 혼인을 맺곤 했는데요. 가야의 여인들이 백제로 시집을 갈 때 망개떡을 이바지 음식으로 싸갔다고 해요. 두 번째는 전투식량 유래설인데요, 임진왜란 개전 초기 홍의장군 곽재우의 의병들은 망개잎에 밥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먹었다고 합니다. 망개잎으로 싼 음식은 쉽게 상하거나 부패하지 않아 의병들의 훌륭한 전투식량이 되어주었고, 왜군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라고는 하지만, 나라의 안위를 염려했던 의령지역 사람들의 충정심이 망개잎을 이용한 음식을 매개로 표출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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