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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호]
문화가 깃든 우리 지역 이야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인 한반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웅들이 존재했습니다. 성별·신분·연령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노력한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문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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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문무왕은 평상시에 죽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소망을 강조했습니다. 아들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문무왕 사후, 동해의 대왕암에 장사를 치르고 감은사를 세워 문무왕이 용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신문왕의 꿈에 문무왕이 나타나 곧 자신이 용이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자 신문왕은 이견대를 세워 문무왕이 용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용이 된 문무왕은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물길에 있는 열두 개의 섬을 차례로 격파했습니다. 마지막 섬인 울릉도를 치려 하자 하늘에서 옥황상제가 치지 말 것을 명하여 울릉도만은 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동해 바닷속을 살펴보면 용이 된 문무왕이 휩쓸고 간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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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이견대 / 이미지 출처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산신이 도운 의병장 박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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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박춘무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문신이며 의병장이고 의관이었습니다. 박춘무가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아양산마저 탈환했을 때의 일화입니다. 박춘무에게 패한 왜군은 그가 아양산에 머물고 있을 때 아양산을 포위하고 식량 보급을 차단했습니다. 이에 의병들은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보름을 넘기자 아사자가 속출했고, 박춘무도 산기슭 큰 소나무 밑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중에 지팡이를 짚은 백발노인이 나타나 박춘무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노인은 그의 머리맡에 있는 소나무를 가리켰고 박춘무가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군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주위에 모여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박춘무는 노인이 가리켰던 소나무를 뽑게 했는데, 소나무가 채 뽑히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많은 양의 물이 솟구쳐 나왔습니다. 물을 마신 군사들은 용기백배하여 항전했고, 수맥이 발견된 것을 알게 된 왜병은 포위를 풀고 북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왜병이 물러가자 박춘무는 물을 내려준 산신에게 제사를 올렸습니다. 죽을 뻔한 군사들에게 하늘이 내린 물이 마치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돌보고 음식을 주는 어버이의 은혜와 같다고 하여, 이때부터 아양산은 ‘부모산(父母山)’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가 판 우물은 ‘모유정(母乳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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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 / 이미지출처 : 지역 N 문화


임진왜란 2차 진주대첩 이후 왜군은 승리를 기뻐하며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기생 논개는 곱게 차려입고서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에 서 있었고 절벽 아래 남강에는 강물이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다들 낭떠러지가 두려워 다가오지 못할 때 술에 취한 왜군 장수가 논개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왜군 장수가 점점 다가와 논개의 몸을 잡자 논개는 ‘이때다! 지금이야!’ 하면서 장수의 몸을 힘껏 끌어안아 절벽 아래 남강으로 함께 떨어졌습니다. 논개의 열 손가락에는 모두 반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이는 만약에라도 깍지 낀 손이 풀어질까 대비한 것이었습니다. 논개는 그렇게 왜장과 함께 의로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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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 / 이미지출처 : 지역 N 문화

서흔남이 지킨 인조와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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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조선시대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피난길에 나섰습니다. 강화도로 가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발걸음 돌렸고 가파르고 험난한 길에 눈까지 내려 결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신하들의 등에 번갈아 업혀 가며 남한산성으로 가던 인조는 한 나무꾼의 등을 빌려 산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나무꾼이 바로 서흔남입니다.

남한산성에 도착한 뒤 인조는 서흔남에게 소원이 무어냐 물었고, 서흔남은 임금님의 곤룡포를 달라고 했습니다. 인조는 자신의 목숨도 살렸는데, 곤룡포가 대수겠거니 하며 곤룡포를 벗어주었습니다. 서흔남은 죽을 때까지 임금으로부터 받은 곤룡포를 지극정성으로 간수하며 자신이 죽거든 곤룡포와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전쟁 중에 남한산성이 포위되자 지원하여, 걸인 행세를 한 체 청나라 군사들의 의심을 피하여 왕의 유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훗날 서흔남은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천인의 신분을 벗고, 훈련주부(訓鍊主簿)와 가의대부(嘉義大夫) 동지중추부사 (同知中樞府事)를 벼슬로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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