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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호]
문화가 깃든 우리 지역 이야기


8월은 한민족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있는 달입니다. 이달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을 추념하고, 민족의 해방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아픔의 역사가 담긴 장소들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평화로 덮어야 할 일제 군사 요새,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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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알뜨르비행장지하벙커 / 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태평양전쟁 시기 제주도는 ‘움직이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변해갔습니다. 알뜨르 외에도 정뜨르, 진드르, 교래리까지 비행장이 건설되었고 그 중 알뜨르 비행장은 중국 폭격용 항공 기지가 되었습니다. 또한 비행장은 유사시 지휘소를 겸한 통신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제는 미군이 제주도를 점령해 일본 본토로 진격하는 시나리오를 걱정했습니다. 이에 연합군으로부터 제주를 보호하기 위해 제주도에 주둔하는 일본군을 12배로 늘리기도 하는 등 방어에 힘썼습니다. 지하로 경사지게 파 들어간 다음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고, 위에 돌무더기와 잡목 등으로 위장하도록 한 지하벙커에는 이러한 목적이 숨어 있었습니다.

수탈의 역사와 근대의 궤적, 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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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 도동리 일본식 가옥 / 이미지출처 : 문화재청


울릉도 도동리에 가면 주변의 건물들과는 다른 형태의 건물이 눈에 띕니다. 2006년 3월 2일 등록문화재 제235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일본인 사카모토가 지은 전형적인 일본 가옥입니다.

이 집에는 다다미방에 일본 특유의 장식용 수납공간인 도코노마가 있고, 뒷마당에는 연못과 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일본 특유의 건축술인 목재를 사용한 기본적인 방식과 수법을 볼 수 있습니다. 손잡이 하나까지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주택은, 자유 이주촌을 형성한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이권이 적어도 1세기 이상 계속되리라고 믿었기에 지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도동리 일본식 가옥은 후손들에게 울릉도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제국의 불빛’에서 희망으로, 해남 구 목포구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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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구 목포구 등대 / 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해남 구 목포구 등대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 수로미산 자락에 있습니다. 이 등대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을 돕는 ‘제국의 불빛’으로 일본인의 기술을 통해 건립되었습니다. 등대가 들어선 땅과 비용은 대한민국 탁지부에서 댔으나, 등대의 관리와 운영은 일본이 독점했습니다. 등대가 제 사명을 다한 후, 2003년에는 높이 36.5m의 선박 모양을 형상화한 새로운 등탑이 건립되었고, 옛 등대와 새 등대는 서로의 세월의 거울이 되어 등대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구 인천부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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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인천부 청사 / 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1933년, 새롭게 지어진 인천부 청사는 1906년 일본 거류민의 행정사무를 맡아보는 관청인 이사청이 있던 자리에 신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기존 이사청을 헐고 다시 짓자는 신축 입장과 일본인 거주지 부근이 아니라 시의 중심부로 옮겨야 한다는 이전신축 입장이 맞섰다고 합니다. 논란 끝에 결국 부 청사는 이전신축하지 않기로 결론지어졌습니다. ‘부 청사의 이전’은 옮겨가는 지역의 발전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전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인을 위한 위치를 고수했던 것이죠. 1933년 신축한 인천부 청사는 1930년대 후반이 되자 공간이 부족해져 동쪽 별관을 새로 지어야 했습니다. 식민지 행정이 빠르게 팽창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죠.

뜨거운 가마솥 같았던 피란 수도,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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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 이미지출처 : 지역N문화


일제는 경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시키기를 원했습니다. 부산이 일본으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항만 관문이자, 교통의 중심지이며, 산업·교육·문화가 발달했다는 점들을 내세워서 말이죠. 이러한 배경으로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식민지 지배자의 권위를 드러내도록 좌우가 대칭된 붉은 벽돌 2층으로 지어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줄곧 경남도청으로 사용되다가, 한국전쟁 기간인 1,023일간은 피란 내려온 대한민국 정부의 청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본래 경남도청의 체육관 건물로 1925년 지어진 무덕관은 임시수도의 국회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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