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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문화가 깃든 우리 지역 이야기


여러분은 '11월 11일' 하면 어떤 날이 떠오르시나요? 흔히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농업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농업은 인류 탄생 이후 가장 먼저 시작한 산업입니다. 반달돌칼을 사용해 작물 수확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드론을 띄워 농약을 뿌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농업의 변천사와 농민들의 생활상과 이에 엄힌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한반도에서 농사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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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한국학중앙연구회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유적(사적 제426호)은 1998년 발굴 조사를 시작한 이래, 2012년 6월에 보완 발굴되었어요. 이곳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경작 혼적과 밭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기존에 발굴되었던 가장 오래된 농경유적인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리 유적(청동기 시대 밭 유적)보다도 약 1500년 가량 앞선 것이어서 한반도 농경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매우 중요한 발굴로 여겨졌어요. 한반도 농경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인 기원전 3.000년 무렵 조와 같은 작물을 경작한 데서 시작되었고 그 흔적은 바로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신석기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답니다.

단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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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고조선은 한반도 최초의 국가입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건국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고조선사회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어요. 또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고조선 시기에 농경이 이뤄졌음을 알게 되었지요. 함경도 함주 주의리에서는 이 시대의 나무로 된 농기구 극이가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알곡 수확 도구로 다양한 형태의 반달돌칼과 돌로 만든 예리한 날의 돌낮이 발견되어 벼 등의 알곡 작물의 수확량이 많아졌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알곡은 썩어 없어져 발굴되지 못하지만, 여러 조사를 통해 목제 농기구인 가래, 보습 등이 이미 고조선시대에 쓰였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담배 농사가 시작된 조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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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국가기록원


흔히 이야기하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언제일까요? 여기 엄혀있는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드릴게요.

옛날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던 효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깊은 병에 걸렸어요. 이때 한 도사가 찾아와서 효자에게 어머니의 병은 개 백 마리를 잡아서 잡숫게 해야 는다고 방법을 알려 줬죠. 또한 개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호랑이로 둔갑할 수 있는 부적을 주었어요.

효자는 부적을 받아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 어머니께 올렸고, 마침내 마지막 개 한 마리를 잡으면 되는 순간이었어요. 효자가 부적을 사용해 호랑이로 둔갑하는 그 모습을 아내가 우연히 보게 되었죠. 효자의 아내는 깜짝 놀라 그만 부적을 쩌버리고 말았어요. 그후 효자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산속으로 들어갔고 먹고 살기 위해서 가축이나 사람을 해치게 되었어요.

관아에서는 호환을 막기 위해서 힘이 좋은 장사를 뽑아 보냈는데 그가 바로 호랑이가 된 효자의 친구였어요. 효자는 호랑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친구에게 담배를 얻어서 피웠다고 하는데, 바로 이 이야기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는 말의 유래로 전해집니다.

한편, 18세기에 형성된 담배의 주요 농사지역으로는 전라도(진안, 장수), 평안도(삼등, 성천, 감동, 평양), 황해도(신계, 곡산, 토산), 강원도(금성, 안협), 충청도(정산), 경상도(영양) 등을 꼽을 수 있어요.

토지조사사업과 일제강점기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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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수원시 박물관


토지조사사업은 1910~1918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우리나라와 식민지적 토지소유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시행한 대규모의 국토조사사업이에요. 조사사업의 내용은 토지 소유권의 조사, 토지가격의 조사, 지형에 대한 조사로 이루어졌어요. 이 사업의 결과로 실제 토지를 소유해왔던 수백만의 농민이 토지에 대한 권리를 잃고 소작인으로 전락한 아픈 역사가 있어요.토지조사사업은 소작농들 뿐만아니라 양반층에게도 영향을 끼쳤는데요, 향촌과 양반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신분질서가 붕괴되는 데에도 일조했어요. 또 당시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경계는 오늘날의 법정동·리의 뼈대가 되어 지금까지도 토지조사사업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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